현대건설이 미국, 영국, 서독,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 본사를 둔 9개 글로벌 건설업체를 꺾고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싼 가격으로 더 빠르게 공사를 끝마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정주영은 공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자신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비책을 꺼내놓습니다. 대형 유조선이 정박하는 항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바다로 나가 해상 터미널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강관 파일(Pile, 지반을 다지기 위해 박는 쇠기둥) 해저 지반에 박아 땅을 단단하게 다진 뒤 그 위에 자켓이라 불리는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는 공사였는데요.
그가 내놨던 비용절감 방안은 모두를 경악시켰습니다. 그는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철제 구조물인 자켓을 제작해 배로 실어 사우디까지 가져오는 방법을 내놨습니다. 현장에선 이렇게 갖고 온 구조물을 설계대로 조립만 하면 된다는 거였죠.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의 역량을 총동원하면 철제 구조물을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거친 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자켓 구조물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공사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 모두 크게 절약되게 되죠.
무게 550t, 10층 빌딩 높이의 철제 구조물을 배에 싣고 1만2000㎞를 항해하는 일을 19번이나 반복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정주영의 계획에 처음엔 현대건설 임원들도 모두 반대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우선 당장 그 정도의 짐을 옮길 수 있는 배도 없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