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

1959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7명의 전 직장 동료와 함께 교토의 후미진 철공소 골목 2층에서 창업한 교세라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적자도 보지 않으면서 임직원 8만여명의 글로벌 전자제품‧부품‧소재 업체로 키워낸 인물이죠.

2010년 일본항공(JAL)이 2조3221억엔(당시 환율 기준 28조5000억원)의 빚을 지고 파산했을 때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무보수 회장직’에 취임해 2년 7개월 만에 회사를 부활시켰죠.

저는 여태껏 이분이 쓰신 책을 10권 이상 읽었는데요. 제가 그의 책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그가 ‘경영의 신’이기 때문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비범한 삶의 여정을 걸어온 평범한 한 남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제가 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해요. 면접을 보기 전에 대기실에서 응시생 네다섯 명과 얘기해보면 친척이 그 회사 임원으로 있는 응시생이 있는가 하면 죄다 무슨 연줄이 있더라고요.”

“나 같은 시골 촌놈은 없었어요. 면접 대기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이 생기더라고요.”

“한 번은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야쿠자 사무실 앞까지 갔어요. 여기라면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생각했죠.”

유년기와 대학생 시절의 이나모리 가즈오는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한 편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받은 장학금의 일부를 가족의 생활비로 보내야 할 정도였죠.

대학 또한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출신이 아니었는데요. 본인 스스로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나왔다고 말할 정도의 학벌이었습니다. 사투리도 심했고, 돈이 없었기에 옷차림도 항상 초라했죠.

그렇기 때문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문을 두드릴 때도 숱한 고배를 마셔야만 했고요.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여러 좌절과 그런 경험들에서 느꼈던 심한 열등감에 대해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는 점이야말로 제가 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참조> - 상사에게 찍힌 덕분에 최고가 될 수 있었던 4명의 리더

그럼 지금부터는 최고라 불리는 인물들을 만든 평범한 멘토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IT‧스타트업 전문매체 아웃스탠딩에 기고한 원문글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피터 드러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 이렇게 네 명의 사례를 다뤄봤는데요.

뉴스레터에서는 분량상 이 네 분의 사례를 모두 소개할 순 없으니 유일한 박사님의 사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사진이나 아래 있는 본문 읽기 버튼을 누르시면 아웃스탠딩에 기고한 글 전체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아홉 살의 유일한 박사님)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나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 그리고 때로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싸워줄 수 있다는 사실만큼 든든한 힘이 되는 일도 없을 텐데요.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만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죠.

특히 아홉 살의 나이에 홀로 고국을 떠나 자신과는 외모도, 말하는 언어도, 먹는 음식도, 사고방식도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섞여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님이 그랬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1904년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는데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처지에 몰린 조국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서구 문물을 배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아버지 유기연 선생의 뜻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떠난 아홉 살의 유일한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카니에 터전을 잡는데요.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미국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 침례교 목사의 집에 우선 맡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뒤부터 유일한은 독실한 침례교 신자 자매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이 두 명의 자매는 각각 서른여덟 살과 서른여섯 살의 독신 여성들로서 신앙심이 깊은 이들이었습니다. 침례교 목사가 이들 자매를 어린 유일한 박사의 보호자로 삼은 건 이들이 그의 교육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로 독일계와 스웨덴계 이민자들로 이뤄진 이곳 사람들은 매우 근면하게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요. 유일한을 부부와 자녀들로 이뤄진 일반적인 가정에 보내면 농사일을 너무 많이 하느라 배움에 소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어린 유일한은 자신을 ‘꼬마 류’(Little Ryoo)라고 부르며 아껴준 두 자매의 따뜻하고 두터운 사랑 덕분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일한에 대한 이웃 사람들의 정은 따뜻했다. 그 외진 이역 땅에 온 아홉 살짜리 조선 아이에게 주변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은 따뜻한 관심과 온정을 베풀어 주었다.”

“두 여인은 교회에 갈 때는 물론 친지들을 방문할 때도 언제나 일한을 데리고 다녔다.”

“커니의 두 자매는 일한을 친가족처럼 대했다. 일한에 대한 정이 두터워지며 아들과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유일한의 딸이 전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열다섯 살 때 일한이 데이트하러 나가면 슬그머니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일한을 두 자매는 흐뭇한 눈으로 지켜봐 주었다.”

(<유일한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유일한 박사님과 이들 두 자매의 한 지붕 밑 생활은 유일한 박사님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카니를 떠나면서 마무리되게 되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 사이의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일한과 이들 자매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갔죠.

아홉 살의 나이에 홀로 고국을 떠난 유일한에게 이들 자매야말로 이모들, 혹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일한은 성년이 된 후에도 두 자매를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의 노후를 위해 생명보험도 들어주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돌보아 주었다.”

“1934년 유일한이 세계일주 여행 중 시카고에 들렀을 때 두 자매는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기 위해 멀리 텍사스에서 시카고까지 찾아왔다.”

“그때 유일한은 그녀들에게 당시로서는 큰돈인 500달러를 남겨주기도 했다.”

(<유일한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만약 아홉 살의 유일한이 이들 자매처럼 자신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가정이 아니라 자신을 구박하거나 아니면 구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는 가정에 맡겨졌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박사님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워낙 출중하고 의지가 강하신 분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못했을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일한 박사님이 이후 일궈나간 업적의 상당 부분은 이들 자매의 고운 마음씨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