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이병철 회장이 책상 뒤로 돌아가 서랍에서 깨알 같은 메모가 빼곡한 서류 다발을 꺼내 들었는데요. 온도‧습도와 같은 기상조건과 전력‧노동력‧용수 등 자원의 조달 방안, 직원들에 대한 기술지도‧훈련 방안 등 공장 건설과 모직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48개 항목마다 각각의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을 정리한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를 본 화이팅사의 임원은 얼굴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병철 회장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완벽주의와 극도의 신중함.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인데요.
이 말처럼 그는 어떤 사업이 됐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매우 철저한 사전 계획을 세운 뒤, 100%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몸을 움직이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돌다리도 두들겨본 뒤 다른 사람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 건너간다.’고 표현하는 말이 있을 정도죠. ‘관리의 삼성’으로 표현되는 삼성의 조직문화에도 창업자의 이 같은 성향이 깊게 배어있고요. 하지만 그를 이처럼 모든 걸 사전에 계획한 뒤 100%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업에만 도전한 인물로 여기는 건 그의 반쪽만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고 할 지라도 이 세상에 ‘100%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방금 말씀드린 제일모직만 하더라도 처음엔 ‘400년의 전통을 가진 영국 모직과 경쟁한다는 발상부터가 어리석다’, ‘제일제당으로 운 좋게 성공하더니 세상만사를 너무 손쉽게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조롱과 함께 시작됐죠.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불안을 품은 채 착수하면 주저하여 전력투구를 못하게 된다. 배수진을 치고 백척간두에서 단호히 결행해도 예기치 못한 장애에 부딪히거늘, 하물며 출발부터 의심하고 망설이면 될 일로 안 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