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제가 얼마 전에 읽은 <특집! 한창기>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콘텐츠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말로 귀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인데요. IT‧스타트업 전문매체 <아웃스탠딩>에 기고했던 원문 중에서 영업‧마케팅과 관련된 내용만 가져와 뉴스레터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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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느 업종에서 활동했던지와 상관없이 후발 주자로 시작해 단기간에 압도적인 1등의 자리에 오른 기업과 조직에게는 분명 커다란 배울 점이 있는데요.
오늘 말씀드릴 잡지 <뿌리깊은나무>도 그렇습니다. 이 잡지는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발간됐던 교양 월간지인데요. 1980년 8월 신군부(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군부세력)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해 폐간될 당시의 발행 부수는 8만여부에 달했습니다.
4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잡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흥미 위주의 내용을 다루는 대중지도 아닌 교양지가 말이죠.
이번 글에서는 <뿌리깊은나무>를 단기간에 당대 최고의 미디어로 만들었던 3가지 비결에 대해서 알아볼 텐데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적 외판원 일에 뛰어들다
<뿌리깊은나무>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 설명하며 창업자 한창기의 역할을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한국에 현대적인 세일즈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인데요.
또한 오늘날에 와서 봐도 매우 독특한 인생 경로를 걸어온 인물입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서 미군 부대에서 성경책과 백과사전을 파는 서적 외판원 일에 뛰어든 인물이니까요.
대학 재학 중에 대통령배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해 경무대(당시 대통령실)로 초청받아 이승만 대통령까지 만났을 정도로 촉망받던 인재였는데 말이죠.
1961년 대학을 졸업한 한창기는 미국계 항공사 한국지사 등에서 몇 달간 짤막하게 일하다 그만두고,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미 8군 기지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영어 성경책을 파는 일을 시작합니다. 미 8군에서 잠깐 한국어 강사 일을 했던 게 인연이 돼서 시작한 일이었죠.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유창한 영어와 고객의 마음을 얻어내는 세심함, 끈질긴 근성을 바탕으로 일류 세일즈맨으로 성장해나갑니다.
“의정부 8군 캠프에 가면 한국 민간인은 지정된 장소에만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사전을 팔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해서건 영내 깊숙이 들어갔다.”
(한창기의 사례를 재연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점심 시간에는 장교 화장실을 기웃거렸다. 소변을 보고 나서도 화장실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장교들이 들어와 자기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장교들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그랬다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날 때 반드시 이름을 불렀다. ‘미스터 윌리엄!’이라고 부르는 것에 감격한 미군 장교가 내 첫 손님이 되었다.”
미군 부대를 돌아다니던 시절의 영업 노하우에 대해 그가 회상한 내용인데요.
미군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던 어느 날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브리태니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중에 하나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그리고 그는 곧장 미국 시카고에 있는 브리태니커 본사에 자신에게 백과사전을 팔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몇 달 뒤 브리태니커 아시아 지역 담당 임원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첫 만남에선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중견 사업가쯤 되는 것으로 알았다가, 막상 만나 보니 새파란 어린 녀석이라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브리태니커 이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휴버트 험프리 전 미국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세른네 살의 한창기)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몇 년 뒤 다시 편지를 보내 브리태니커 본사를 설득했고, 결국 판권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몇 년간 한창기는 자신이 꾸린 세일즈 조직을 진두지휘하며 브리태니커 사전의 한국 판매량을 모두가 놀랄 만큼 끌어올렸습니다. 1968년 무렵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의 가격은 18만3600원으로 피아노 한 대보다도 더 비쌌는데도 말이죠.
한창기가 올린 성과를 통해 한국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깨닫게 된 미국 본사에서는 1968년 한국에 정식으로 지사를 설립합니다. 한창기는 총지배인 겸 부사장직을 맡아 사실상 경영을 이끌다가 1970년에 한국지사 사장직에 정식으로 취임했고요.
한국 브리태니커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는데요. 설립 2년 만에 세일즈맨의 수가 250명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 초반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빌딩인 서울 청계천 삼일빌딩 두 개 층을 통으로 임대해 사용했을 정도로 사세를 확장해나갔습니다.
영업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뿌리깊은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시죠. <뿌리깊은나무>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영업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도 영업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입니다.
사실 <뿌리깊은나무>의 창간 자체가 어느 정도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영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1976년 <뿌리깊은나무>가 창간되기 전부터 한국 브리태니커에서는 <배움나무>라는 잡지를 홍보판촉 목적으로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고객들에게 할부 고지서를 보내면서 이 잡지도 함께 끼워 보냈던 건데요.
1976년 창간 이후로는 이 같은 <배움나무>의 역할을 <뿌리깊은나무>가 이어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뿌리깊은나무>가 계속해서 한국 브리태니커의 등에 업혀가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독자적인 기업으로써 살아남기 위해 <뿌리깊은나무>는 발간 초기부터 영업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 이전까지 국내의 어떤 신문사도, 잡지사도, 출판사도 시도한 적 없었던 참신한 방법으로 광고주들에게 다가갔죠.
창간 이듬해인 1977년 <도대체 뿌리깊은나무란 무엇일까?>라는 책을 출간한 게 대표적인데요.
‘한 조그마한 이념을 펼치려고 나온 잡지가 모든 예상을 뒤엎고 끈질기게 목숨을 버텨 온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광고주들에게 ‘도대체 뿌리깊은나무란 어떤 잡지’인지를 알리기 위해 출간된 영업 목적의 책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기업들이 홍보(PR), 브랜딩, 마케팅, 투자 유치(IR), 인력 채용(HR) 등에 도움을 받기 위해 SNS상에서 브랜드 채널을 운영하고, 더 나아가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해 다루는 책을 출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뿌리깊은나무>는 이 같은 세련된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광고주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나갑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영업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영업을 병행해나갔던 것이죠.
덕분에 창업 초기부터 여러 광고주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광고 자체를 하나의 읽을거리로 만들다
광고 영업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게 아니었는데요. 잡지에 실리는 광고를 하나의 재밌는 읽을거리로 만드는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뿌리깊은나무> 같은 교양지에 광고를 많이 싣는 건 금기시되던 분위기였습니다.
‘교양지는 상품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광고를 많이 실으면 그 잡지는 지성인 독자들에게 외면당한다’라는 게 당시 출판업계 종사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죠.
하지만 <뿌리깊은나무>는 이 같은 통념을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습니다. 대신 광고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광고 카피와 디자인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온 힘을 쏟았죠.
광고주가 전달한 문안과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 싣는 대신 직접 광고 카피를 쓰고, 이미지를 디자인해 광고주에게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차분하게 설득적인 어조로 카피를 써내려 가는 기사식‧설득식 광고, 한 기업의 광고를 매 호마다 연속해서 싣는 시리즈형 광고라는 새로운 형태의 광고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통해서 <뿌리깊은나무>가 미디어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영업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영업과 마케팅 능력이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 역량이라는 사실은 업종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필연적인 법칙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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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레드브릭 대표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입니다.